안성이나 강화 쪽 동물병원 원장님들을 만나 뵈면, 도심 병원에서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이야기를 종종 들려주십니다. 심장사상충에 걸린 아이들 이미티사이드 치료 이야기부터, 버려진 유기견들을 거둬 돌보는 이야기까지요. 도농이 맞닿은 지역이라 도심과는 병의 결 자체가 다릅니다.
그중 하나가 렙토스피라 이야기였습니다. 쥐의 배설물이 매개가 되어 옮는 병인데, 듣고 보니 이게 오늘 하려는 이야기와 딱 맞닿아 있더군요.
혈뇨라고 하면 대부분 방광염이나 결석부터 떠올립니다.
실제로 가장 흔한 원인이 맞고요. 그래서 저도 앞선 글들에서 방광염, 요로결석, 방광암, 전립선 질환, 자궁축농증, 신부전까지 하나씩 자세히 다뤘습니다.
그런데 이 여섯 가지를 다 살펴봐도 답이 안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혈뇨의 원인이 정작 방광이나 신장이 아니라, 전혀 다른 곳에 숨어 있을 때죠.

오늘은 그 “나머지” 이야기입니다. 흔하진 않지만 놓치면 위험한 숨은 원인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붉은 소변인데 알고 보면 피가 아닌 경우, 즉 가짜 혈뇨까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쥐약(살서제) 중독 — 며칠 뒤에 터지는 출혈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건 쥐약입니다. 시판되는 쥐약의 상당수는 혈액을 굳게 하는 응고 기능을 방해하는 항응고제 계열이에요.
우리 몸은 피를 멎게 할 때 비타민K를 재활용해서 응고인자를 만드는데, 항응고 쥐약은 바로 이 비타민K 재활용 과정을 막아버립니다. 그러면 피를 굳히는 인자가 만들어지지 못해, 몸 곳곳에서 출혈이 생기게 되죠.
무서운 건 시차입니다.
강아지가 쥐약을 먹어도 그 자리에서 바로 쓰러지지 않습니다.
몸에 남아 있던 응고인자가 다 소진될 때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보통 먹은 지 2~3일이 지나서야 출혈이 시작되고, 눈에 띄는 출혈 증상은 대략 3~7일 사이에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잇몸이나 코에서 피가 나고, 혈변이나 검은 변을 보고,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옵니다. 심하면 가슴이나 배 안에서 출혈이 생겨 호흡곤란이 오거나 갑자기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며칠 전에 뭔가 주워 먹은 것 같은데” 하는 정황과 함께 혈뇨나 잦은 출혈이 보인다면, 반드시 쥐약을 의심하고 즉시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다행히 해독제가 명확합니다.
비타민K1을 상당 기간(보통 몇 주간) 투여하면 응고 기능이 회복돼요. 다만 이건 반드시 수의사의 진단과 처방 아래 이뤄져야 하는 치료지, 집에서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핵심은 “먹은 직후엔 멀쩡해 보여도 결코 안심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집에 쥐약을 두는 경우는 드물지만, 방역용으로 야외(화단, 상가 뒤편, 하천변, 공사장 등)에 놓인 미끼를 산책 중 주워 먹거나, 쥐약 먹고 죽은 쥐를 물어 2차로 중독되는 경우가 있어 방심은 금물입니다.
2. 진드기가 옮기는 바베시아 — 방광이 아니라 적혈구가 문제
두 번째는 조금 결이 다릅니다. 바베시아는 진드기가 물 때 옮기는 원충(작은 기생 생물)인데, 이 녀석이 적혈구 안에 들어가 적혈구를 파괴합니다. 그 결과 심한 빈혈과 함께 붉은 소변이 나타나죠.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이때의 붉은 소변은 방광이나 요로에서 난 피가 아니라, 부서진 적혈구에서 흘러나온 색소 때문이라는 겁니다.
즉 방광은 멀쩡한데도 소변이 붉게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방광염 약을 써도 낫지 않고, 오히려 잇몸이 창백해지고 기운이 없고 황달(눈·잇몸이 노래짐)이 함께 오는 게 특징입니다.
바베시아는 진드기에 물린 뒤 대략 1~3주의 잠복기를 거쳐 증상이 나타납니다.
문제는 진드기가 워낙 작고 귀 뒤나 사타구니, 꼬리 밑처럼 잘 안 보이는 곳에 붙어서, 보호자가 물린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그래서 풀숲이나 산을 다녀온 뒤 붉은 소변과 무기력, 창백함이 함께 온다면 바베시아를 한번쯤 의심해 보셔야 합니다. 예방의 핵심은 결국 진드기 예방약을 꾸준히 쓰고, 야외 활동 후 몸을 꼼꼼히 확인하는 것입니다.
3. 렙토스피라증
세 번째가 바로 그 원장님들이 들려주신 렙토스피라증입니다. 보통 “렙토”라고 줄여 부르죠.
1번 섹션이 쥐약으로 인한 혈뇨라면 이번엔 쥐 배설물에 의한 혈뇨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사실 이 병은 저에게 좀 특별합니다. 제가 동물약품 유통을 하던 시절, 노비박(Nobivac) 종합백신을 직접 취급했거든요. 인터벳에서 MSD로 넘어간 뒤에 다뤘던 제품이라, 렙토가 백신 안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는 저에겐 이론이 아니라 몸에 밴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도시에 사시는 분들은 쥐 볼 일이 거의 없습니다.
저도 쥐를 본 지 정말 오래됐어요. 쥐만 보이면 박멸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말이죠. 그러니 “요즘 세상에 쥐가 어딨어?” 하고 생각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그런데 원장님 말씀은 조금 달랐습니다.
강아지가 비실비실하면서 피오줌을 눈다고 데려오면, 당연히 처음엔 방광염이나 신부전, 결석을 의심하고 그에 맞춰 경험적 치료를 시작하신다고 해요.
그런데 그렇게 흔한 원인으로 접근했는데도 낫지 않고, 알고 보니 원인이 렙토스피라인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도시에서는 흔하게 볼 수있는 진단은 아니죠.
렙토스피라균은 주로 쥐나 야생동물의 소변으로 오염된 고인 물, 젖은 흙을 통해 옮습니다.
산책 중 그런 웅덩이 물을 핥거나, 오염된 흙을 밟은 발을 핥는 식으로요. 핵심은 이겁니다.
쥐가 살 만한 환경이라면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하는 병이라는 것. 도시 안에도 쥐가 드나드는 음산한 뒷골목, 재래시장 주변, 습한 구석, 공사장이나 하천변은 분명히 있으니까요. 시골이나 도농 접경 지역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증상으로는 발열, 식욕 저하, 구토, 근육통과 함께 혈색소뇨(붉은 소변), 황달, 그리고 심하면 급성 신부전까지 옵니다. 특히 이 병이 사람에게도 옮는 인수공통 감염병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아픈 아이를 돌보는 보호자 본인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Tip : 종합백신 4종과 5종의 차이, 바로 이 렙토입니다
제가 백신을 취급하며 늘 설명하던 부분이기도 한데, 보호자분들이 꼭 알아두면 좋은 게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맞는 종합백신에 4종과 5종이 있는데, 그 차이가 뭔지 아시나요? 바로 렙토스피라가 들어가 있느냐 아니냐입니다.

흔히 DHPPL이라 부르는 5종 종합백신의 맨 끝 글자 L이 렙토스피라를 뜻합니다.
여기서 렙토를 뺀 것이 4종(DHPPi)이고요. 즉 렙토 예방을 하려면 L이 포함된 백신을 맞아야 합니다.
참고로 렙토가 포함된 접종은 항체 유지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아, 보통 1년마다 보강접종이 권장됩니다.
그러니 활동 반경에 쥐나 습지, 하천 같은 위험 요소가 있는 아이라면, 우리 아이가 맞는 백신에 렙토가 포함돼 있는지 한 번쯤 확인해 보시고 수의사와 상의해 보세요. 산책 중 정체 모를 웅덩이 물을 먹지 않게 하는 것만으로도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4. 외상·요도 손상 — 부딪힌 뒤에 나오는 피

마지막 진짜 혈뇨 원인은 외상입니다.
의외로 놓치기 쉬운데, 교통사고, 높은 곳에서의 낙상, 다른 개와의 싸움, 배를 세게 부딪히는 사고 등으로 방광이나 요도, 신장이 손상되면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올 수 있습니다.
이 경우는 대개 “사건”이 먼저 있습니다.
어디서 떨어졌거나, 차에 부딪혔거나, 크게 다툰 직후에 혈뇨가 보이는 식이죠. 겉으로 큰 상처가 없어도 안에서 방광이 손상되거나, 심하면 파열됐을 수 있어 매우 위험합니다. 소변이 배 안으로 새어 나가는 상황이면 응급이고요.
그래서 외상 뒤에 혈뇨가 보이거나, 사고 후 소변을 아예 못 보고 배가 부풀며 힘들어한다면 지체 없이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외상성 혈뇨는 “기다려 보자”가 통하지 않는 영역입니다.
5. 붉다고 다 피는 아니다 — 가짜 혈뇨 이야기
이제 이 글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인데요.
소변이 붉거나 갈색이라고 해서 그게 전부 “피”인 건 아닙니다. 진짜 혈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소변에 적혈구가 섞인 게 아닌 경우가 있는데, 이걸 가짜 혈뇨라고 부를 수 있어요. 원인이 다르니 대처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혈색소뇨 — 적혈구가 몸 안에서 깨진 경우
앞서 다룬 바베시아나 렙토스피라가 여기에 해당하고, 여기에 하나 더 짚고 싶은 게 양파·마늘 중독입니다.

양파와 마늘 이야기는 잠깐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요.
강아지에게 위험한 음식이라고 하면 대부분 포도나 초콜릿을 먼저 떠올립니다.
실제로 포도·건포도는 소량으로도 급성 신부전을 일으킬 수 있는 무서운 음식이 맞습니다. 그런데 포도는 애초에 “간식”이라, 위험한 걸 아는 순간 안 주면 그만이에요.
문제는 양파와 마늘입니다.
이건 우리가 먹는 거의 모든 양념 음식에 숨어 있거든요. 국, 찌개, 볶음, 자장면, 갈비 양념, 심지어 마늘빵까지요.
그래서 “설마 이 정도로?” 하며 사람 음식 한 입을 무심코 나눠주는 사이, 우리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독을 먹게 됩니다.
독성의 절대 강도로 줄을 세우면 포도가 더 위협적일 수 있지만, 우리 식탁에 훨씬 자주 오르고 양념 속에 숨어 방심하기 쉽다는 점에서는 양파·마늘이 오히려 더 위험한 복병인 셈이죠. 게다가 익히거나 말리거나 삭혀도 그 독성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양파와 마늘은 적혈구 막을 산화시켜 파괴하는데, 대략 체중 1kg당 15~30g 정도부터 위험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마늘은 양파보다 더 적은 양에도 반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적혈구가 혈관 안에서 깨지면, 그 안에 있던 헤모글로빈이라는 붉은 색소가 소변으로 빠져나와 소변이 붉게 보입니다. 방광에서 난 피가 아니라, 몸 안에서 부서진 적혈구의 색소인 거죠.

근색소뇨 — 근육이 손상된 경우
격한 운동이나 심한 근육 손상, 극도의 체온 이상, 근육에 작용하는 독소 등으로 근육 세포가 파괴되면 미오글로빈이라는 근육 색소가 소변으로 나와 붉은색을 띱니다. 흔하진 않지만 원리는 알아둘 만합니다.
아예 피가 아닌 착각들
중성화하지 않은 암컷의 발정 출혈이나 자궁 분비물이 소변과 섞여 혈뇨로 오해되기도 합니다(이건 자궁축농증 편에서 다룬 내용과도 연결됩니다).
드물게는 색이 진한 음식이나 특정 약물, 혹은 그냥 농축된 진한 소변이 붉거나 갈색으로 보여 오해를 부르기도 하고요.
결국 이 진짜와 가짜는 집에서는 구별할 수 없고, 현미경으로 소변 속 적혈구를 확인해야 갈립니다. 그러니 붉은 소변이 보이면 혼자 단정하지 말고 병원에서 검사부터 받아야 해요.

마무리하며
혈뇨의 원인은 흔한 방광염과 결석에서 시작하지만, 오늘 살펴본 것처럼 쥐약, 진드기, 세균 감염, 외상처럼 방광 바깥에 숨어 있는 경우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붉은 소변이 늘 진짜 피는 아니라는 것, 그 구별은 결국 병원의 정밀 검사로만 가능하다는 것도 기억해 두시면 좋겠습니다.
결론은 언제나 같습니다. 소변 색이 이상하면 혼자 원인을 단정하지 말고, 소변을 받아 병원에서 검사부터 받아보세요. 색깔 하나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으니까요.

가장 흔한 원인이 궁금하다면 강아지 방광염 편을, 소변을 힘들어하며 조금씩 눈다면 강아지 요로결석 편을, 수컷이라면 강아지 전립선 질환 편을, 중성화하지 않은 암컷이라면 자궁축농증 편을, 물을 많이 마시고 소변량이 늘었다면 신부전(SDMA) 편을, 치료해도 낫지 않고 반복되는 혈뇨라면 강아지 방광암 편을 함께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 혈뇨의 원인을 처음부터 한눈에 보고 싶다면 강아지 혈뇨 원인 총정리(허브)에서 시작하세요.
이 글은 정보 제공을 위한 것으로, 실제 진단과 치료는 반드시 담당 수의사와 상의해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자료 (References)
Merck Veterinary Manual — Anticoagulant Rodenticide Poisoning in Animals — 항응고 쥐약이 비타민K 재활용을 막아 출혈을 일으키는 기전, 섭취 후 2~5일의 지연, 해독제 비타민K1을 정리한 수의학 표준 자료입니다.
Vetster — Blood in Urine (Hematuria/Hemoglobinuria/Myoglobinuria) in Dogs — 붉은 소변을 혈뇨·혈색소뇨·근색소뇨 셋으로 나누고, 진단의 첫 단계가 이 셋을 가리는 것임을 설명한 자료입니다.
dvm360 — The Diagnostic Approach to Hematuria — 혈뇨가 혈색소뇨·근색소뇨·빌리루빈뇨·가성혈뇨와 혼동될 수 있어, 적혈구 확인이 감별의 출발점임을 다룬 임상 자료입니다.
MSD 매뉴얼(일반인용) — 바베시아증 — 진드기가 매개하는 바베시아 원충이 적혈구를 파괴해 빈혈을 일으킨다는 개요와 진단·치료를 정리한 자료입니다.
MSD 매뉴얼(일반인용) — 렙토스피라증 — 렙토스피라균의 감염 경로와 증상, 인수공통 감염병으로서의 위험성을 다룬 자료입니다.
데일리벳 — 인수공통감염병 렙토스피라증, 국내 반려견에서 연속 보고 — 국내 반려견 렙토스피라증 실제 보고 사례와 초기 증상(발열·구토·신부전 등)을 전한 수의 전문매체 기사입니다.
헬스경향 — 강아지가 쥐약 먹었다? 최대한 흡수 막는 게 상책 — 살서제 중독 시 혈뇨·혈변 증상과, 비타민K로 길항하는 치료 원리를 국내 상황에 맞춰 설명한 칼럼입니다.
헬스경향 — 반려동물이 혈뇨를 봤다면? 동물병원 내원이 필수 — 진짜 혈뇨와 근색소뇨(격한 운동·스트레스로 인한 붉은 소변)의 차이를 짚은 칼럼입니다.
비마이펫 — 강아지·고양이 소변검사 항목 및 의미 — 소변검사의 잠혈 수치가 적혈구뿐 아니라 헤모글로빈·미오글로빈에도 반응한다는 점을 정리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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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보: 다국적회사 제약 영업 14년 + 동물의약품 유통 총괄 10년 경력자(전 사노피, 에스틴 근무)가 전하는 더 많은 이야기는 아래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